걸리버 스토리

맥켄지의 의병 사진

우리는 멀리 가지 않아 바위와 모래가 깔린 강변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사동 하나가 목이 찢어질 뜻이 나를 부르면서 자기가 들고 있던 무기를 내던졌다. 우리는 발길을 멈추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비명의 뜻을 알았다. “그게 무슨 뜻이요?” 나는 그들에게 물었더니 김민근은 이렇게 대답했다. “의병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쏠 작정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일본인인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평선을 향해 서서, 그들이 잘못 알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용감하게 나를 가리켰다. “영국 대인이요.” 나는 사동들과 함께 소리 질렀다. 이러한 일이란 점잖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매우 필요한 조치였다. 그제서야 우리는 바위 사이를 달리면서 누더기를 입고 우리에게 점차로 접근해 오는 무리들을 볼 수가 있었다. 몇 사람이 우리에게 접근해 오고 있는 동안, 그들의 층은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자 20 여명의 군인들이 손이 닿을 듯이 가까운 곳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식 군대의 제복을 입은 한 청년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우리가 서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들은 우리에게 뛰어왔다. 드디어 그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 내게 가까이 와서 자기들의 실수를 정중하게 사과했다. “당신이 소리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정조준해서 막 발사하려는 참이었지요.” 얼굴이 아주 못생긴 한 청년이 탄창을 빼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 의병대의 몇 사람은 14~16세를 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앞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이 그들의 모습인데,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 “대한제국의 비극” / F.A 매켄지 지음 / 신복룡 역주 / 집문당 -




"대한제국의 비극"의 156쪽 ~ 194쪽에


제15장 의병을 찾아서 / 제16장 일본의 만행 / 제17장 폐허가 된 제천 / 제18장 의병과 더불어


의병 관련하여 많이 알려져 있는 사진의 내용이 있습니다. 의병의 시작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만에 찬 한국인들이 처음으로 집결한 곳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80~90마일 떨어진 산간지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의 유명한 호랑이 사냥꾼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의병 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뭉쳤다.


이방인인 저자가 의병을 찾게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각지에서는 다소 흥미 있는 전투가 계속 되고 있음이 명백했다. 나는 그들을 직접 찾아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란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되었다.


하지만 결심을 실행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의병을 만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 당국이 제공한 정보는 단편적인 것이었고 또 지방의 의병 활동을 과소평가 했고 대수롭지 않게 해 취급했음이 분명 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병들은 하루 이틀 전에 경부선이 어느 한 역을 폭파했음이 확인 되었다 . 소수부대의 의병이 서울에서 20마일도 안 되는 곳에 있는 일본군 무기고의 수비병을 습격 하고 그들을 몰아낸 다음 총과 화약을 탈취해 갔음을 알았다. 대부분의 전투는 서울에서 4일 정도의 보행이면 도착할 수 있는 충주 부근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곳을 목표로 정하고 될 수 있으면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나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라 길을 떠났다.


저자는 의병을 만나기 위하여 충주, 이천, 제천, 원주를 거쳐 양근에 도착 합니다.


원주에 도착하기 전 주민들은 우리가 의병을 만났음이 틀림없으리라고 말했다. 원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5~20 마일을 더 가야만 의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거리를 지나 다시 양근으로 가 보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드디어 양근에 도착 했지만 이곳에서도 다시 우리는 실망을 실망했다. 우리가 여기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 그날 아침 서울에서 15마일 떨어진 한 부락에서 전투가 있었으며, 한국 군인들이 패퇴했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만난 의병의 모습과 상황은 이렇게 표현 합니다.


처음 보기에도 양근은 황량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문 뒤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과 아이들은 살금 살금 기어 나와 차츰 차츰 접근해 왔다. 나는 그날 오후 으리으리하게 생긴 한 한 옥의 뜰에 숙소를 정했다. 사동은 마당에서 저녁을 짓다가 갑자기 집기를 떨어뜨리고는 내게 달려왔다. “선생님 의병이 나타냤습니다. 여기 군인들이 왔어요” 그 순간 5~6명의 의병들이들이 뜰에 들어서더니 내 앞에 열을 지어 서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모두가 18세에서 26 세 사이의 청년 들이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얼굴이 준수하고 훤칠한 청년이었는데 그때까지도 구식 군대의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 다른 두 사람은 군복바지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초라한 누더기 한복을 입고 있었으며 , 가죽장화를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허리에는 집에서 만든 무명의 탄대가 매달려 있었고 탄환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한 사람만이 챙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밖에는 누더기를 꼬아 만든 머리띠를 매고 있었다.


저자 매켄지는 스코틀랜드계의 영국인으로 런던의 “데일리 메일Daily Mail” 극동 특파원이었고 역자는 이 저서를 "역주자 초판 머리말"에 이렇게 소개 합니다..


" 이 책은 최근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어떻게 몰락했으며 또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벽안의 창을 통해 조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한국이 문호를 개방 한 1860 년대부터 을사보조약을 기점으로 하여 우리가 음울한 식민지지배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다르고 있는 이 책은 금석의 시차를 떠나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족의 영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비단 시대로 따져 30~40 년을 넘지 못 하지만 그 교훈은 영원이 우리 민족과 함께 존속 될 것이다."




- 매켄지가 의병 사진을 촬영한 곳으로 추측 되는 곳 (양평군 오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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