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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상함에 묻힌 비운의 황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릉(사적 207호) 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합장된 능이지만 정작 명성황후의 유해는 없다. 파란만장했던 인생만큼이나 사후에도 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1895년 음력 8월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명성황후의 시신은 궁궐 밖으로 옮겨져 불태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장례는 숨진 지 2년여 만인 1897년 11월 국장(國葬) 으로 치르게 되고 청량리 인근에 안치된다. 이때 능이 있던 곳이 지금 홍릉수목원으로 유명한 서울 홍릉이다.
당시 관에는 유해의 일부인 손가락 뼈마디 정도만 겨우 수습했을 뿐 사실상 시신은 없었다. 그러다 고종황제가 서거한 1919년에야 명성황후는 현재의 남양주 홍릉에 고종황제와 합장됐다.
홍릉은 태릉 등 다른 조선 왕릉에 비해 화려하다. 다른 곳에는 봉분 주변에만 올망졸망 모여있는 석물이 이 곳에는 신도(神道) 라 불리는 진입로 양편에 늘어서 있다.
또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꽤큰 규모의 침전(寢殿) 이 있다. 이는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함에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 황제의 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효석(吳孝錫) 관리소장은 "한 왕조의 운명이 다하는 시점에 만든 능이 가장 화려하다는 것이 묘하다" 고 말했다. 홍릉 옆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순정효황후가 합장된 유릉이 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묘도 이곳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인 마석공원묘지 근처에 있다.
- 중앙일보 8월 31일 중에서 -


홍유릉을 둘러보고......

역사적인 사연을 알기 전에는 깨끗한 공원 정도로 생각하던 능이다. 홍릉과 유릉을 합쳐서 홍유릉이라고 하는데 금곡시내에 위치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홍릉과 유릉 앞에는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모양세의 건물이 각각 한채씩 있고 그 앞에는 석상들이 가지런히 서 있다. 소나무 숲과 유릉 앞의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기도 하여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펴면 여유로운 공원의 모습이다. 또 유치원에서 단체로 많이 오기에 늘 분위기는 한 많은 역사의 한 자락을 보이기 보다는 공원의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조선의 마지막 국왕의 능이지만 일부 풍수지리학자들은 명당자리가 아니라 고 한다. 그것은 일본이 우리의 풍수 사상까지도 조직적으로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맥을 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더 분노한다. 명성황후를 민비로 비하하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전국의 산에 쇠말뚝을 박힌 약소국 조선의 아픔을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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