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창고에 더 많은 사진이 있습니다.


월문리 묘적사

묘적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 신라 문무왕(661~690)때 당대의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묘적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현재까지 ‘신중동국여지승람’으로 양주목편에 기록도 있어 조선 세조 때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증명되고 있다.

절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묘적사에 대한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 절은 과거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가 있던 곳으로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해 이 곳에 절을 지은 후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승려교육과 군사훈련을 받게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이 절에서 승군을 훈련시켜 왜적과의 전투에 출전시켰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는 승려들이 무과에 대비하는 훈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묘적사는 흔하지 않은 건축양식으로 사찰의 건물 대부분이 다듬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전 왼쪽 뒷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삼신각이 있고 옆에 경주의 석굴암을 떠오르게 하는 석굴이 있다. 사찰의 왼편 연못에 물래방아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연못 한쪽에 약수터가 있는데 물통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으로 지하수는 아닌듯 하다.

우리가 사찰을 찾은 날에는 한 신도가 은행을 손질하고 있었는데 그 냄새는 무척 지독하였고 사찰 내로 흐르는 도랑을 노랗게 물들리고 있었다. (사찰 앞 주차공간은 협소하다.)




copyright © 2000 걸리버의 양수리 여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