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화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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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1월 21일

남양주 주리예 산부인과에서 출생

이른 새벽에 진통이 시작되어 잠시 입원실에 누워 있다가 분만실로 들어갔다. 거의 자연분만으로 출산이 가능한 상태였는데 출산직전에 위험성이 있어 제왕절개로 출산하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어렵게 세상에 나온 셈이다. 그럴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어른들은 나보고 속이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보아구렁이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취미를 붙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여섯 살 적에 훌륭한 화가로서의 장래를 버리게 되었다. 나는 첫 번째 그림 과 두 번째 그림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낙심을 하였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언제나 그 어른들에게 설명을 해 준다는 것은 어린이들로서는 힘이 드는 노릇이다.

이름 짓기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늘 예쁘고 독창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여러가지 제약이 따랐다. 아들이라 돌림자를 무시하기가 부담이 되었고 행정편의상 이름에 사용할 수 있는 한자가 제한되어 이런저런 조건을 모두 충독하는 두 단어는 의외로 적었다. 게다가 성하고 어울려야 하니.....
우선 돌림자 "환"자가 뒤에 위치 하도록 해서 가능한 두글자를 모두 만들고 한자로 옮기기 어렵거나 뜻이 만들어지지 않은 조합을 지워나갔다. 그리하여 다섯개의 이름이 남았는데 그중에 부모님이 하나를 택하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첫 손주라 부모님은 내심 처음부터 이름을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계셨겠지만 우리 형제들 중에 이름으로 불편해 하는 동생들이 있어서 앞서서 그러한 문제를 제거 하자는 의도가 있었다.
결국 다섯개의 이름중에 "성환"이와 "지환"이가 남았는데 아버지는 성환이를 좋아 하셨다. "성환"이가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한자의 뜻이 별로였고 국회의원 "유성환"이 국가보안법 문제로 사회 이슈화 되어 있던 때라 왠지 흔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뜻 지"의 "굳셀 환"으로 지환이라고 하기로 정했다. 어버지는 한동안 지환이를 무심결에 "성환"이라 부르시곤 했다. 아직까지도 무척이나 죄송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쏟아지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메는 우리들을 보고 우리 아들은 자시의 의지대로 소신것 살아 달라는 소망을 담았다. 그게 고집불통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의지를 튼튼하게 하여 소신것 살아 주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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